나의 어린시절...

젊은날의 초상...

현재의 나의생활...

끝을 맺으며...

 

나의 어린시절

 

 

사람들은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큰 인물이 난다'고들 한다. 그런 연유로 따지자면 나는 큰 인물(?)이 될 자연적인 조건을 타고났다. 한려수도의 자락에 위치한 여천군 율촌면 상봉리가 바로 내 삶의 시작을 알리는 텃밭이었기 때문이다. 그 좋은 자연경관들이 내 품성을 이만큼이라도 빗어낸 것이겠구나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정작 나의 어린 시절은 앞뒤 동산에 살구꽃 진달래는 만발하였지만 우리 집 형편은 부엉이와 뜸북새의 슬픈 가락이 어울리는 가난과 질병에 찌든 생활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어렵고 암담했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을 기적으로 여기며 산다. 6남매의 올망졸망한 터울과 그들의 애처로운 눈망울, 술에 취에 세상을 한탄하시던 아버지, 온 몸으로 무거운 가정사를 이고 지고 버티던 어머니의 지친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우리 집안의 암담했던 사정 뒤에는 이 나라 민초들의 한을 달래던 잘못된 술문화가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당시만 해도 논밭 있고 면사무소에 다닐 정도의 아버지였지만 술의 마력 앞에는 맥을 못추는 허수아비였다. 술에 빠진 가장의 책임의식은 주정꾼의 걸음걸이만큼 들쭉날쭉이었다.

 

 

난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아버지를 빼앗아간 술은 밉다. 지금도 술병을 보면 아버지에 대한 애절한 추억이 가슴을 시리게 하지만 나에게서 모든 것을 꼬이게 비틀던 그 주정꾼의 술냄새는 정말 싫다. 그리고 그토록 술에 매여 살게 아프게 내몰았던 역사의 굴레도 이제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가난하면 질고도 많던가? 유난스럽게도 우리 형제들은 병치레를 많이 했다.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던 둘째형의 아픔이 어리고 여린 내 마음의 아픔이었고 병약한 동생의 비틀거림도 역시나 내 몫이 되었다.
집안 곳곳에 쌓이고 잠긴 신음과 어둠의 그늘은 대문을 열고 나서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지는 못했다. 동네방네 요란스럽던 애들의 재잘거림과 해 가는 줄 모르게 뛰놀던 추억은 지금도 아련하다. 뒷산에 오르며 산토끼도 쫓고 전쟁놀이로 옆집 장독 깨던 개구쟁이가 또한 어린 나였음을 생각하면 절망 속에서도 소망의 새싹이 돋고 있음을 실감한다.
소를 몰고 개선장군이 되어 들어서던 해질녘에 동네 어귀에서 한없이 포근함을 느끼던 소년이었고, 집집마다 피어오르던 굴뚝의 연기를 보면서 나 또한 행복을 꿈꾸던 철이 든 아이었다. 그 때에 아가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밥 먹으라 손짓하시던 아줌마들의 투박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날 찾으시던 우리 엄마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나의 중학시절

 

 

< 중3때의 앙상한 모습 >

꿈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을 좇아 나서야 한다. 나에게도 처음으로 산골의 울타리를 나와 도전의 발걸음을 옮긴 것이 면소재지에 있는 율촌중학교를 다닌 것이다. 하지만 8킬로라는 거리는 앳된 중학생인 나에게는 결코 가깝거나 쉽지는 않았다. 어떤 때는 아침 일찍 소를 몰고 나가 배를 채워서 들어오면 아무리 뜀박질을 해도 첫 시간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을 앞설 수 없었고 학교를 마치고 덜커덕거리는 연필통 소리를 들으며 뛰어와도 집에는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밥은 없었다.
보릿고개는 여전히 우리 집 앞마당까지 드리고 있어 그 험한 길을 넘는 일은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힘들었다. 특별히 청소년기를 보내며 사춘기에 있는 나에게는 솜이불을 덮어씌우고 물을 붓듯 잔인했다.
그래도 달리고 달렸던 그 길에서 나는 인생 마라톤 연습을 아마도 가장 알차게 한 것 같다. 오르막도 헉헉대며 달리고 내리막을 내리달아 뛰어도 보고 으스스하고 귀신이 잘 나온다던 무서운 고개를 용기를 내어 다리에 힘을 주고 무사히 통과하는 감격(?)도 맛봤다. 꼬불꼬불한 모퉁이를 돌면서도 내 입에는 흥겨운 유행가와 노래가 있었다. 등하교 시간에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뿌리고 간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버스 타고 집에 가는 친구를 보면서 더 힘이 빠진 다리를 끌던 기억도, 그 때 창피스러워 애써 피하던 예쁜 여학생들의 시선도 이제껏 선명하다.
생존경쟁의 치열함을 나는 통학버스에서 처음 맞은 것 같다. 고무풍선처럼 밀어 넣고 밀어 넣어서 그 속에서 얼굴을 찡그리던 여학생의 고통이나 그런 차라도 놓칠세라 악을 쓰고 발을 올려놓던 우리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지금도 그 때의 이름도 모르는 차장 누나의 애씀과 한 사람이라도 더 태워서 지각하지 않게 하려고 데롱데롱 차에 매달려 그 발버둥치던 희생을 기억한다. 나 또한 여러 번의 위기적인 상황도 있었지만 꽉 붙잡고 매달려서 중학교과정을 놓치지 않고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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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맞은 인생위기와 도전 - 어린 공원이 되어

 

 

예나 지금이나 가난하면 으레 따르는 것이 질병과 못 배운 한이 서린 가슴이다. 나 역시 다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순천으로, 여수로 통학버스에 가방을 매고 교복을 입고 등교할 때 나는 고향을 떠나 처량하게 부천으로 가야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가난 때문에 밤이면 수많은 날을 눈물로 베게를 적시던 어느 날 '서울로 가자. 서울 가면 신문을 팔아서라도 공부하자'고 다짐하고 가출하여 상경을 했다.
소망을 품고 꿈을 꾸려던 순수한 촌놈에게 이 세상의 욕심과 악덕기업주는 포승줄을 쥐고 기다리고 있었다. 16세의 어린 나에게 부천에 있는 영세 모타 제작업소는 지옥이었다.
어리고 나약한 나에게 주어진 작업은 그 무거운 모타를 작업대 위에 올리고 조립이 끝나면 내리기를 하루에 수십 대! 무자비하고 노예처럼 혹독한 작업으로 인해 결국 피지도 못하고 꺾이는 꽃송이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허리는 움직일 수 없고 손목의 인대는 늘어나서 움직일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이제 내 인생은 끝인가?' 울다가 지쳐서 꼭 성공해서 돌아오리라 했던 그 고향에 결국 폐인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 부천의 모타 제작소의 작업모습 >

 

 

 

 

< 함께 일했던 동료들>

 

 

순천성서학원에 입학하여 - 새로운 시작

 

 

< 성서학원의 기숙사 전경 >

꺾인 가지에도 꽃이 피고 다시 열매를 낼 수 있을까? 내 인생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절대자를 찾아 부르짖는 성서학원에 입학을 한 것이다. 절대자만이 깨지고 망가진 내 육신과 영혼을 고치고 치유할 수 있음을 어렴풋이 나는 인정했다. 어쩌면 힘을 잃고 절망한 인생들에게, 외롭고 고달픈 나그네를 보듬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과정이 지금 그런 절망 가운데 있는 나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 때 나는 성경 앞에 내 생명을 걸고 소망을 찾아 울부짖었고 찬 마루 바닥에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 불쌍하고 가련한 나에게 신은 다시 기회를 주셔서 건강도 회복되고 소망의 싹도 틔워주셨다.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의 두 가지를 만났다. 첫째는 절대자를 만난 것이고 일생을 통해 일하고 봉사할 수 있는 피아노를 만난 것이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 피아노! 남은 생애 동안 사랑과 평화의 화음을 선물할 수 있는 피아노를 새로운 소망 속에 만났다. 절망 속에 피어난 햇살이었다. 어느 날 성서학원에 있는 피아노가 고장 났을 때 순천에서 조율사 한 분이 왔는데 깨끗하고 깔끔한 외모에 상당한 수고비를 받는 것을 보고 그래! 내가 할 일이 바로 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된 일을 찾았다.
그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다. 그곳에서 겸손히 삶을 꾸려가는 인생을 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곳에서 희망과 소망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나는 내 일생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를 정했고 그 일을 찾았다.

 

 

가난한 인생을 진정 이해하고 섬기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자신있게 그런 절망과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굶어 본 사람, 밥이 없어 설움을 당해본 눈물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질병으로 주사바늘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만이 병상에 있는 사람을 진정 가슴으로 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식량과 학비를 조달하기 위해 들판과 산을 헤매며 뱀을 잡아 파는 '땅꾼'생활도 경험하면서 이 시대의 가난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안을 수 있음을 감사한다. 꿈을 위해 애쓰고 발버둥치는 청소년들을 소망으로 볼 수 있음을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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