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시절...

젊은날의 초상...

현재의 나의생활...

끝을 맺으며...

 

다시 찾은 꿈을 위해 다시 서울에 오다 - 낙원상가의 개척자

 

 

꿈이 있어 가슴이 뛰는 사람은 그 꿈을 머리에만 두지 않고 삽을 들고 정원에 나서는 자이다. 나는 피아노를 만나고 조율에 대한 소망을 가진 뒤 한시도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단순히 건반을 만지고 음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조율하고 행복의 선율을 가정마다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어린 가슴에 멍을 묻혔던 서울을 다시 오게 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소망을 들고 서울역에 내렸다.
예술가이든 기능 보유자든 기술과 기능을 터득하고 전수 받기 위해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눈물의 수련기간이 반드시 있다. 나 역시 피아노를 내 파트너로 맞이하기 위해서 그 대가를 치뤄야함을 각오는 하고 있었다.그러나 나의 생활 환경에 있어 피아노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고작 학교 풍금소리 듣던 시골뜨기가 그 거대한(?) 피아노를 다루고 음을 조율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 그 자체였다. 그러나 꿈을 가진 자는 멈출 수가 없는 것이 이치이듯 나는 내 인생을 걸고 덤벼들었다. 낙원상가의 처절한 생존 싸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꿈을 끌어안고 울었고 포기하자는 낙담이 유혹할 때도 울었다. 지성이면 하늘도 감복한다고 했던가! 아무도 없는 상가에 남아 말도 못하는 피아노를 붙잡고 사정도 해보고 발길질도 하면서 어우르고 달래기도 수만 번은 했다. 손이 다 부르트도록 건반을 두드리고 조였다.
하기야 나이 20대 후반이 넘어서 피아노를 전공한다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부모님의 사랑 받으며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씨름하며 연습해도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데 이 나이에 시작하는 나에게는 오직 목숨을 거는 정신력 싸움이었다. 다짐하며 되?던 확신은 비록 늦었다 해도, 아무리 힘들어도, '하면 된다'는 것이요, 내가 의지하고 믿는 절대자 앞에 내 소원을 겸손히 아뢰면 "사람은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분 안에서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믿음과 소망의 씨앗은 눈물로 비록 씨를 뿌리는 아픔은 있었지만 기쁨으로 볏단을 안고 돌아오는 농부처럼 나 또한 1급 국가 기능자가 되었다.

 

 

눈물의 검정고시 고개를 넘다.

 

 

이미 배운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니고 가진 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겠지만 실상 배우지 못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높은 것이 학력의 벽이다. 사소한 것에도 내세우며 울게 만드는 것이 그 졸업장이다. 단순히 가난하고 배울 여력이 안돼서 가지 못한 고등학교가 이렇게까지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결론은 하나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의 담을 넘는 것이다.
일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지친 몸으로 책상에 앉는다는 것은 가히 상상하지 못할 등정이었다.
그래도 꿈이 있었기에 참았다. 남모르게 흘린 코피는 얼마며 서러워서 울고 분해서 흘린 눈물은 얼마던가? 시골에서 처마 밑의 바위를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구멍을 낸 것을 보았다. 내가 아무리 힘없고 약해도 물방울보다 낫지 않는가? 이런 고집과 오기가 내 손에 검정고시 합격증을 쥐게 했다. 어떤 명문고등학교의 졸업장보다 귀했고 거울 앞에선 내 모습은 개선장군처럼 당당해 보였다.

 

 

꿈을 더 크게 , 높게 심자 - 음악(피아노)을 전공하다.

 

 

서툴고 미숙한 단계이지만 피아노와 함께 하면서 나의 일을 찾고 점점 더 사회를 알아가면서 나의 가슴에 술렁이는 소망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살다갈 내 인생이 아니라 이 사회의 어려움 속에 있는 이웃에게, 특별히 나와 같이 청소년기를 어렵게 보내는 후배들에게 '나와 같이 여러분도 얼마든지 이 고난과 가난과 아픔을 이길 수 있다'고 전하며 살기 위해 나 또한 더 높은 소망과 꿈을 좇는 나와의 약속이었고 도전이었다. 서툰 사람에게 다른 일까지 하는 것은 몇 배의 고통이 있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야간에 꿈을 좇아 공부하는 청년기의 나의 삶은 절망을 물리치는 외침이었다.

 

 

가난,시련,좌절,외로움 이사람은 이겼습니다.
독학으로 노력해서 꿈을 이루던 졸업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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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장이 되다. - 섬김과 봉사의 리더쉽을 훈련 받다.

 

 

< 중학교를 졸업한 시골내기 촌놈이 해냈습니다 >

그러나 나의 피아노 실력이 체계화되는 것과 비례해서 학교생활도 점차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고 학교를 향한 나의 역할에 대한 여유도 생겼다. 연습하자! 섬김을 연습하고, 봉사의 리더쉽을 훈련받자. 동역자를 섬기며 사회에 나아가 봉사해야할 나의 그릇을 키우자! 그래서 총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하여 감사하게도 나의 학우들은 그런 나의 열정과 소원에 감동하여 리더쉽 훈련의 기회를 나에게 주었다.
총학생회장! 가슴이 뛰는 일이다. 시골뜨기 내가 총학생회장이 되다니! 최고 지성인들의 전당에서 내가 수 많은 학생들의 대표가 되어 앞에 서다니! 그것은 분명 하나님이 나에게 준 기회였다.

 

 

나는 일반 학생의 신분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면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지도자의 역할과 리더쉽의 중요함을 때로는 밤을 지새며 부대끼면서, 학생들의 권리와 정당한 요구 앞에 온 몸을 던지면서 동참하여 민주사회의 힘과 약하고 억울한 자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았다.
학교와 학생간의 중간자로서 대변자가 누구인지 보았다. 철저하게 이 시대의 일꾼과 사명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함을 나는 보았다. 그 때의 나에게 주어진 훈련의 기간은 나의 일생 삶에 섬김과 봉사의 자세를 가르쳐준 행운의 기회였다.

 

 

 

 

<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학과 임원들과 찰칵... >

 

 

 

 

< 학창시절 캠퍼스에서...>

 

 

결혼! 평생 동반자를 얻고 - 나의 보금자리를 틀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나의 마음에 이는 소망과 꿈이 영글어 갈 때 그 꿈과 소망을 함께 일궈갈 평생 동반자를 맞이하고 행복한 보금자리를 틀게 되었다. 현숙한 여인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는데 부족하고 연약한 나에게 보내진 나의 아내는 역시 최고의 감사요, 기쁨이다.
이제는 어떤 역경도 두렵지 않고 어떤 고난도 무섭지 않다. 가정의 행복, 나의 안식처는 나를 새로운 희망으로 나서게 한다. 사랑하는 두 아이의 아빠로서 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아빠로 승리하기를 다짐해 본다.

 

 

 

 

< 사랑하는 나의 천사들(희수,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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